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동(李範同)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97610
  • 전몰일자 : 19520612

공훈사항

이범동 하사는 1929년 1월 7일 충청북도 제천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쌍방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3월 14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범동 하사는 두매리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을 벌였다. 사단은 주저항선을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잇는 선으로 추진하여 중공군 제63군 예하 제188사단과 대치중이었는데, 제15연대는 두매리 부근의 전초진지 방어를 전담하게 되었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1월 3일 오전 8시 105mm 야포 18문과 155mm 야포 6문, 그리고 4.2″ 박격포 8문이 일제히 포문을 열어 두매리고지 일대를 집중 사격하였고 곧이어 전폭기 4대가 측방 엄호포격을 실시하며 적진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탈환작전은 부진하였고 계속된 돌격로를 개척하면서 적진으로 돌입하여 마침내 중공군을 격파하고 122고지와 148고지를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고지를 탈환한 후 곧 이은 중공군의 역습을 받아 다시 빼앗기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1952년 2월부터 6월까지는 약간의 기습작전이 전개되었으나, 쌍방이 점령하고 있는 방어진지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공산군은 진지에 박혀 있다가 주로 야간에 작전을 전개하는 반면, 국군과 유엔군은 주로 주간에 활동하였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대규모 공격작전을 보류하고 계속 정찰과 기습을 통하여 북한군과 접촉을 유지하며 방어진지를 더욱 강화하였고, 다만 아군의 경계선 및 주저항선의 요부에서 소규모 공방이 전투 초점이 될 뿐이었다.
이 하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했다. 이범동 하사는 일부 병력과 정찰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과 조우하여 사격전을 전개하며 고군분투하였으나 끝내 방어하지 못하고 1952년 6월 12일 고양대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동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5판-5면-07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ㅋ-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