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길(李範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4609
  • 전몰일자 : 19530620

공훈사항

이범길 일병은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2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본부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37도선으로 철수하여 재정비 중이었고, 제7사단은 영월 일대에서 적과 대치 중인 상황이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과 리퍼작전(3. 7.~3. 31.) 때 사단은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사단은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 소양강 변의 정자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시작된 중공군 5월 공세 때 사단은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5월 하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사단은 8, 9월에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와 883고지를 확보했다. 사단은 미 제2사단의 단장의 능선 탈취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9월 24일 백석산을 공격했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고지 탈취에 실패하고 28일 동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 후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부대정비를 했다.
사단은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잇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인 크리스마스고지에서 중공군 제63군 예하 제204·202사단의 3차에 걸친 공격(1차 : 1951. 12. 25.~28., 제2차 : 1952. 2. 11.~13., 3차 : 1952. 10. 6.~14.)을 막아내며 이 고지를 지켜냈다.
사단은 1953년 5월 18일 제20사단에 전선을 인계하고, 미 제10군단 예비로 전환되어 현리 일대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한 후, 6월 17일 제20사단의 좌측 전선을 인수하여 백석산 전방의 938고지 일대의 주저항선 방어에 임했다. 중공군은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기 전에 소규모 부대를 아군 전선에 침투시켜 탐색전을 실시했다. 이 일병은 1953년 6월 20일 사단사령부 경계 중에 적 정찰대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13판-6면-17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4-ㅊ-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