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백택(이백택)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36501
  • 전몰일자 : 19510624

공훈사항

이백택 하사는 1930년 2월 6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이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하사는 1951년 1월 5일에 입대 후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의 입대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 공세)에 밀려 D방어선(평택-안성-장호원-원주-삼척을 잇는 선)과 E방어선(일명 황우선, 영월-삼척을 잇는 선)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제9사단은 1951년 3월 5일에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월 12일부터 18일까지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제9사단은 4월 중순에 강원도 고성군 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중공군은 1951년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이 공세로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전력에 큰 손실을 입은 제9사단은 1951년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와이오밍(Wyoming)선(캔자스선 북방 20km 내외의 철의 삼각지대를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중공군 제65군 예하 제165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 결과로서 제9사단은 고대산을 확보하였다. 이후 사단은 철의 삼각지 확보에 중요한 감제지형인 김화읍 계웅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제9사단은 치열한 공방전 끝에 6월 28일에 고지를 확보한 후 계속되는 적의 역습을 격퇴했지만 이 과정에서 이 하사는 돌격을 감행하다 적탄에 맞아 1951년 6월 24일에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백택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ㅂ-02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