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백찬(李百燦)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205797
  • 전몰일자 : 19501027

공훈사항

이백찬 이등중사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북한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1949년 10월 중순, 강원도 춘천의 제7연대로 입대했다. 당시 연대는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춘천에 연대본부를 위치시키고 화천 축선에 대한 방어임무를 담당했다.
이백찬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남침 징후가 농후하던 1950년 초기에 방어태세를 철저히 대비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침략공격을 했을 때, 사단은 3일간 춘천을 지킴으로써 서부전선에서 국군이 한강방어선을 준비할 시간을 획득했다. 이후 사단은 춘천과 홍천에서 철수하여 원주-충주-문경-함창을 연결하는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지연전을 실시했다.
제6사단은 8월 1일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에서 의흥을 거쳐 신녕-화산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하며 북한군의 8월과 9월 총공세를 격퇴했다. 그리고 미 제8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제6사단 장병들도 지금까지 방어하던 지역에서 반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9월 18일에 조림산 일대의 북한군을 포위 섬멸하고자 했으나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했다.
이백찬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9월 19일에 사단의 주공으로서 조림산을 공격했고, 북한군은 22일부터 전면적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이에 연대 장병들은 퇴각하는 북한군 제8사단을 함창 방향으로 추격하여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하고, 10월 5일에 차량편으로 서원(춘천 북쪽 17km)까지 이동하여 38도선을 돌파했다.
이후 사단은 10월 14일에 원산 북쪽의 덕원을 탈환하고 마식령을 넘어 10월 19일에 성천-순천을 점령하고, 계속 개천과 희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10월 23일에 희천을 점령했다. 이후 유엔군은 10월 24일에 1차 총공격을 실시했다. 당시 이백찬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10월 26일에 압록강변의 초산을 점령했다. 이때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후방을 차단당했다. 이에 장병들은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포위망을 돌파하며 철수해야 했다. 그는 분대장으로서 분산된 분대원들을 통솔하여 적 포위망을 돌파하다가 10월 27일에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백찬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1-ㄲ-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