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백이(李伯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3263
  • 전몰일자 : 19500907

공훈사항

이백이 일병은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9월 7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당시 국군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백이 일병 역시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백이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전선 상황은 미 제8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지상군은 대구로부터 마산까지 서남부에서, 국군은 대구로부터 포항의 형산강까지 동부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대치 중이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안강-형산강에서 방어하고 있었다. 이백이 일병과 장병들은 안강 북쪽고지 일대로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였으나, 미처 진지도 편성하기 전에 적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아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포병과 공군기의 지원으로 고지를 재탈환하였다.
이 일병과 같이 입대한 신병들이 전투에 투입되어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전사하는 사례도 허다하였다. 군번은 고사하고 부대원 명부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중대장은 물론 소대장이나 분대장이 소속 대원의 이름을 익히기도 전에 전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백이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그는 전투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백이 일병은 1950년 9월 7일 안강 부근 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용감히 싸웠으나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백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2판-7면-18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3-ㅂ-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