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백영(李百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8612
  • 전몰일자 : 19500625(제25연대가 실제 전투를 한 6월 26일 또는 27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됨.)

공훈사항

이백영 일병은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8월경 제2사단 제25연대에 입대했다.
6·25전쟁 발발 1주 전인 1950년 6월 1일 제7사단 제3연대가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고, 대신 6월 15일부로 제2사단 제25연대가 제7사단으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주둔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의정부로 이동하지 못하다가 전쟁이 발발하면서 원래 소속인 제2사단으로 다시 복귀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제7사단은 북한군의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병력 면에서는 7배, 화력 면에서는 18배나 우세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 첫날 포천과 동두천이 적에게 점령당하자, 육군본부에서는 제2사단을 의정부 북방 축석령으로 투입하여 역습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둘째 날 의정부마저 탈취당하고 말았다.
제25연대는 공비 토벌차 안동에 있던 제1대대를 제외하고 제2·3대대를 동반하고 25일 밤 온양에서 출발하여 26일 아침에 용산역에 도착했다. 오후에 창동으로 이동했다가 그곳에서 채병덕 총참모장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고 유재흥 의정부지구전투사령관 지휘하에 백석천 방어에 투입되었다. 연대는 오후 3시경까지 백석천 제방을 따라 급편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연대는 2.36인치 대전차포 4문을 백석교에 배치하고 적을 기다렸다. 26일 오후 5시경 남진하는 적 전차대열을 발견하고 연대는 기관총과 박격포, 소총으로 집중사격을 하면서 선두 전차가 백석교로 다가오자 2.36인치 대전차포 4문으로 연속사격을 가했다. 이때 4대의 전차는 피해를 입지 않고 그대로 교량을 통과했으나, 화기 분대장이 다섯 번째 전차의 궤도를 명중시킴으로써 후속하던 10여 대의 전차를 의정부 방향으로 퇴각시킬 수 있었다. 27일 적의 주력이 보·전·포 협동으로 공격을 해오자 연대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미아리로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했다. 이날 전투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백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5판-4면-21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9-ㅇ-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