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백신(李伯信)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83662
  • 전몰일자 : 19521018

공훈사항

이백신 하사는 1925년 12월 2일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2년 1월 13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동 훈련소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는 조교로서 신병훈련에 전념하다 1952년 4월 28일 제37교육보충연대가 창설되자 이 부대의 창설요원으로 전속되었다.
한편, 한국 정부는 1952년 초부터 휴전 후의 국방을 고려하여 육군의 규모를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마련하여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미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중장은 국군의 증강을 지지했고, 1952년 5월 유엔군사령관으로 새로 부임한 클라크 대장이 이를 적극 추진함에 따라 구체화되어 실현단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에 따라 4월 28일 3개의 경장비 교육보충연대(제37·38·39연대)가 창설되었고, 6월 13일 다시 같은 성격의 3개 연대(제50·51·52연대)가 창설되었다. 이 중 제37연대는 독립연대로서 전선을 맡은 미 제9군단 예비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 무렵 전선 상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됨에 따라 공산군 측이나 유엔군 측 모두 대규모 공격작전을 전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진지나 주저항선 상의 주요 지점에 대한 소규모 전투만이 진행되었다. 제37연대가 소속된 미 제9군단은 철원, 김화 축선을 담당했고, 백마고지, 저격능선, 삼각고지 등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제37연대는 군단의 예비로서 교육훈련을 하면서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수색정찰, 매복작전, 보급로 확보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적은 정찰대를 투입하여 군단 후방지역에서 첩보수집, 습격·파괴활동과 교란작전 등을 전개했고, 이에 대응하여 제37연대가 투입되었다. 이 하사는 1952년 10월 18일 분대원을 이끌고 철원 일대에서 수색정찰작전 중에 적 정찰대의 습격을 받고 교전 중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백신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74-ㅂ-08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