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백식(李伯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0763
  • 전몰일자 : 19521104

공훈사항

이백식 일병은 경상북도 청도군 대정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1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백식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당시 전황은 1952년 초반까지 쌍방 간에 합의되었던 임시휴전선이 백지화됨에 따라 회담의 추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백식 일병은 호남지구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다. 당시 수도사단은 후방지역 공비들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여 후방치안의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게 됨에 따라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1952년 2월부터 백아산, 모후산, 조계산 지구에 대한 소탕 작전과 반복 수색을 전개하였다. 이어 5월에는 금성-북한강 동안까지의 전선을 인수하여 동부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이 일병은 연대병력과 화천 일대 금성천 북안 일대에서 정찰 활동을 수행하던 중 북한군과 마주치게 되어 교전을 벌여 중공군 여러 명을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백식 일병과 연대병력은 1952년 7월 8일 지형능선을 공격해 점령했으나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또다시 9월 6일 북한군은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해 왔다. 이에 이 일병을 비롯한 장병들은 최후까지 분전했으나 수도고지는 함락되었다. 이어 9월 9일 고지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연대는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때 이 일병과 장병들은 고지를 향해 돌진해 고지를 점령하였다. 10월 6일부터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은 수류탄이 무수히 투척되고 소화기탄과 포탄이 난무하는 격렬한 양상으로 치달았다. 이백식 일병과 연대병력은 포탄이 빗발치며 낙하하는데도 미친 듯이 참호전을 전개하며 어떤 희생에도 고지를 방어하려 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백식 일병은 1952년 11월 4일 양주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백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7-ㅇ-01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