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백순(李白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707234
  • 전몰일자 : 19500906

공훈사항

이백순 일병은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낙동강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8월 6일 대구에 설치된 제7교육대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대구방위사령부 경비대대에 배치되었다.
북한군의 남진이 계속되고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대구로 이동함에 따라 임시수도인 대구 방위가 급선무가 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24일 제2사단을 해체하면서 육본 직할로 대구방위사령부를 설치했다. 그러나 이 사령부는 기구만 설치되었지, 실질적인 병력이 없었기에 대구 방어를 위해서는 각 도에서 집결한 경찰 병력, 청년방위대, 후방 병력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동 사령부는 8월 1일 대구방어 및 팔공산 지역에 대한 경비를 위해 대구 동촌비행장에서 경비대대를 창설했다. 병력은 대구 시내에서 모집한 신병들로 편성했고, 대원들은 일제 99식 소총으로 무장하여 전투 능력은 보잘것없었으나, 정신력만은 조국을 지켜내겠다는 투지로 가득 찼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 8월 공세를 맞이하여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경비대대는 출동태세를 갖춘 상태에서 교육훈련을 하고 있었다. 대구 지역은 1948년 11월 대구 주둔 제6연대가 무장 폭동 사건을 일으켰고, 북한에서 파견한 유격대가 대구 인근의 산악지대에서 유격활동을 하는 등 전쟁 전부터 좌익 세력과 적 게릴라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이었다. 8월 중순 전선이 왜관-수암산-유학산-군위-보현산을 잇는 대구 북방에 형성되면서, 대구 지역에 대한 북한군 정찰대와 지방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 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대구에는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적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9월 6일 대구 시내에 적 게릴라가 출몰하자 경비대대는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이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적 게릴라들을 추적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백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9판-7면-10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1-ㅅ-10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