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백수(李伯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5100270
  • 전몰일자 : 19501002

공훈사항

이백수 일등중사는 1929년 2월 19일에 충청남도 강경군 서고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50년 3월 2일,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동년 4월 19일 제6사단에 예속되어 원주로 이동하여 사단 예비로서 교육훈련에 집중하였다.
북한군이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이백수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9연대 본대는 원주에서 기차로 청량리를 거쳐 6월 26일 새벽 5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연대는 제7연대를 증원하여 춘천지역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6월 27일에 홍천 방면의 제2연대를 증원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6월 30일 오후에 홍천에서 원주로 철수했다.
제19연대는 7월 1일 야간에 이천지역으로 긴급히 투입되어 북한군 제15사단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7월 4일에 진천으로 철수하였고, 7월 9일에 수안보로 이동하여 사단에 합류했다. 이후 제6사단은 7월 12일 조령과 이화령을 포함한 문경지역 방어에 돌입하여 문경-점촌-함창 축선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을 맞아 31일까지 지연전을 실시했다.
이백수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8월 1일 새벽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양곡동간 능선 일대를 점령하여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8월 6일에는 선돌주막 남쪽의 236고지를 새로운 방어진지로 이동했다. 그리고 8월 12일에는 신령 북쪽의 고지군을 잇는 방어진지를 점령하였고, 이곳에서 북한군의 8월 공세를 맞아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이후 북한군은 9월 2일부터 대규모 공세를 실시하여 대구-영천-경주 지역에 집중적인 공격을 했다. 사단은 신령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으나 잘 극복했다. 그리고 제19연대는 9월 5일에 영천으로 이동하여 제8사단을 증원하여 영천의 위기를 구하고 9월 12일에 사단으로 복귀하여 반격을 준비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낙동강 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은 조림산을 일대에서 9월 22일까지 완강히 저항하다가 퇴각했다. 제6사단은 9월 23일부터 패주하는 북한군을 추격하여 함창-문경-충주 방향으로 공격하고,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했다. 사단은 10월 1일부터 춘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2일에 원창고개에서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파했다. 이날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백수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7938국)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38묘역-4판-1872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ㄴ-09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