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백무(李白茂)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02770
  • 전몰일자 : 19501004

공훈사항

이백무 일병은 경상남도 마산시 오동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 공세를 격퇴하던 때인 1950년 9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당시 사단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일병 역시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백무 일병은 가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전선에 배치될 무렵 사단은 북한군 제1사단이 가산 일대에서 공격을 재개하여 일부 병력을 도덕산(660m) 일대로 남진시키고 일부 병력을 팔공산 일대로 진출시키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대구 북방고지 일대에 배치되었다. 9월 11일부터 대구 북방고지 일대에선 치열한 접전이 전개되었다. 제8기병연대가 방어하고 있던 우측진지가 돌파되어 그 남쪽 314고지마저 피탈됨으로써 대구 방어의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사단 장병들은 9월 14일 기관총과 박격포, 수류탄 등으로 완강히 저항하는 북한군과 수차례 치열한 접전을 수행하며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때 북한군 제13, 제1사단의 패잔병들은 다부동, 가산성 북쪽으로 철수하고 있었으며 결국 대구 점령을 위한 북한군 제2군단의 9월 공세는 좌절되었다.
이도옥 일병을 비롯한 장병들은 9월 25일 낙동리에서 도하를 완료하고 추격 작전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부대 장병들은 선산-상주-보은을 거쳐 미원으로 진출하면서 낙동강 전선에서 소백산맥의 험한 준령을 따라 북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북한군 패잔병을 추격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소탕하였다.
이백무 일병은 전투 경험이 많지는 않았으나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백무 일병은 1950년 10월 4일 38선 진격전에 참가하여 임무를 완수한 후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백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2-ㅁ-01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