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백만(李佰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56235
  • 전몰일자 : 19510831

공훈사항

이백만 하사는 경상북도 군위군 옥포읍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하사는 1950년 11월경 입대한 후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제21연대는 유엔군과 같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1월 25일을 기해 일제히 반격 작전을 개시했다. 1951년 2월 5일부터 횡성지구 위력수색작전을 실시하던 중 제8사단 제21연대 장병들은 1951년 2월 11일부터 강원도 횡성군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의 제4차 공세를 방어했다.
이때 제8사단은 미군 제10군단의 예하에 있었다. 국군과 미군은 강원도 홍성군에 대한 탈환을 이루지 못하고 횡성군 공근면 오산리 일대에 긴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중공군 2월 공세가 전개되어 전황은 국군에게 매우 불리했다. 특히 중공군은 제8사단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했다.
제8사단은 전력보충 이후, 1951년 4월 3일 호남지구의 공비토벌작전을 위해 전라북도 전주시로 이동했다. 당시 전라도 일대에 지역 좌익 및 북한군 낙오병이 합세하여 공비가 약 3,000여 명에 달했다. 제21연대는 1951년 4월 16일부터 충남 경찰 소속 제18전투경찰대와 함께 충청남도 금산군 대둔산의 공비토벌에 나섰다.
토벌대는 일대의 고지를 차례로 점령해나가고 인근의 민가를 수색하며 거점을 확보했다. 이후 제8사단은 5월 19일 충청북도 제천군으로 이동하여, 미군 제10군단 제3사단의 예비대로 준비태세를 갖추는 한편 후방을 경계하게 되었다.
이후 미군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휴전회담기간 전선의 소강에서 제한목표공격계획을 통해 동부전선의 방어선을 전진시켰다. 이에 제8사단은 미군 제10군단 제2사단과 함께 1951년 8월 9일부터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장승리 일대의 노전평에 주둔한 북한군 제2사단, 제13사단을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이 하사는 1951년 8월 31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백만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14면-872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ㅋ-06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