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백규(李白珪)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27722
  • 전몰일자 : 19530718

공훈사항

이백규 하사는 1926년 6월 5일에 강원도 원주군 지상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7월 18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백규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중순, 제6사단은 봉화산-765고지-교암산을 연하여 배치되어 있었다. 제7연대는 교암산과 그 북쪽의 전진기지인 575고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 고지는 대치하고 있는 적들에겐 눈엣가시처럼 돌출되어 있었다. 중공군은 이 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4월부터 수시로 공격했다. 그런던 중 중공군은 10월 9일에 전진기지인 575고지와 금성 부근 무명고지에 대해 공격했고, 사단은 이에 맞서 공격하여 격퇴했다.
이백규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 예비로 있다가 10월 21일부로 전투지경선이 확장되면서 전방 방어진지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가 점령한 지역은 사단의 우측 방어지역으로서 교암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이었다. 이후 사단은 예하 3개 연대가 교대로 전방연대와 사단 예비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제6사단의 담당 지역에서는 1953년이 되어서도 큰 전투 없이 전선의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7연대는 4월 1일부로 사단 좌측 방어부대가 되면서 봉화산 지역을 담당했다. 그러던 중 중공군 2개 사단이 금성천 부근을 확보하기 위해 7월 10일부터 공격을 개시하여 14일에 탈취했다. 이에 사단 장병들은 중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교암산 및 봉화산 지역을 포기하고 주파령-적근산을 잇는 선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이곳 방어지역에서 진지를 강화하며 수색 및 매복작전에 집중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7월 18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와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백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6-ㅅ-04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