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배희(李培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3113
  • 전몰일자 : 19500725

공훈사항

이배희 일병은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으로 후퇴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25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당시 사단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배희 일병 역시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배희 일병과 장병들은 제1군단에 편성되어 추격해 오는 북한군 제12사단을 맞이하여 내성천 일대 지연전에 투입되었다. 이 무렵 서측에서는 북한군 제12사단이 의성-안동으로, 동측에서는 북한군 제5사단 일부와 제766부대가 청송-안동 방향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안동 외곽에 중앙선 축선을 중심으로 방어편성 되었다.
이배희 일병은 전투 경험이 없는 신병에 불과하였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다. 이 일병과 같이 입대한 신병들이 전투에 투입되어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전사하는 사례도 허다하였다. 군번은 고사하고 부대원 명부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중대장은 물론 소대장이나 분대장이 소속 대원의 이름을 익히기도 전에 전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배희 일병은 1950년 7월 25일 안동 부근 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중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배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7판-4면-25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2-ㅌ-05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