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배홍(李培洪)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17069
  • 전몰일자 : 19501019

공훈사항

이배홍 일병은 경상남도 동래군 구포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시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배홍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11일, 제6사단은 신녕 북방에서 북한군의 마지막 공격을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 가지 직전에 제6사단은 8월 31일 야간에 기습공격으로 화산을 공격하여 탈취했다. 한편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해 최후 결전형태의 대규모 공세(일명 9월 공세)를 개시했다. 제6사단은 포병 화력은 물론 미 공군 전폭기의 항공 화력을 지원받아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결국은 적들의 공격기세가 점점 약화되었고, 9월 12일부터는 공격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미 제8군은 인천상륙작전에 호응하기 위해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낙동강 선으로부터 일제히 반격작전을 시작했다. 이배홍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조림산 일대의 북한군을 포위 섬멸하고자 했으나 북한군도 방어태세를 강화하고 완강히 저항하여 쉽지 않았다. 북한군은 9월 21일이 되면서 퇴각하기 시작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9월 22일부터 함창-충주 방향으로 북한군을 추격하여 9월 28일에 충주를, 30일에 원주를 확보했다.
이배홍 일병은 장병들과 함께 10월 4일에 춘천 시내를 관측할 수 있는 춘천 남쪽의 수리봉과 652고지를 점령했고, 10월 5일에 차량편으로 서원(춘천 북쪽 17km)까지 이동하여 38도선을 돌파했다. 북한군은 38도선 일대에서는 강력하게 저항했다.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제9사단 예하 2개 대대 규모를 격파하고 10월 9일 오후 늦게 화천을 점령했다. 그리고 10월 11일에 김화를 경유하여 금성을 점령했다. 이후 화천-김화–신고산을 거쳐 성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북한군 패잔병들은 강력히 저항했으나, 전투력이 월등히 우세한 아군은 적들을 제압하며 마식령 고개를 넘어 양덕까지 점령했다. 그리고 10월 18일에 성천을 점령하고, 19일에 순천을 점령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히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배홍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89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1-ㅌ-03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