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배현(李培賢)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2100235
  • 전몰일자 : 19501027

공훈사항

이배현 이등상사는 1927년 11월 8일 서울시 용산구 원효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7년 12월 1일 조선경비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1948년 6월 7일 제1공병대대가 창설되자 동 대대로 전속되었다. 동년 8월 19일 경기도 부평에 제1공병단이 창설되자 대대는 동 단에 편입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1공병단은 경인선 철교(상·하행선) 폭파 임무를 부여받았다. 장병들은 28일 01시 45분경 육군 총참모장의 폭파 명령을 받고 폭파 작전을 시행했으나, 경인선 철교는 원인 불명으로 불발되고 말았다. 6월 29일부터 시작된 한강방어선전투 때 제1공병단은 반파 상태에 있는 경부선 철교에 폭약을 장전하고 폭발시켰으나, 복선의 남단에 있는 교대와의 연결부분이 약간 이탈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공병단은 노량진-수원-평택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7월 5일 오산 북쪽의 일부 교량을 폭파했고, 이후 금강 방어선-소백산맥 방어선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교량폭파와 장애물 설치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이 아군 방어선을 돌파하여 계속 남하함에 따라 유엔군은 8월 1일부터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하여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
한편, 육군본부는 1950년 8월에 제1공병단을 제1201건설공병단으로 개칭하는 한편, 제1101야전공병단과 제1102야전공병단을 창설하여 제1·2군단을 각각 지원하게 했다. 이때 이 이등상사는 제1101야전공병단에 편성되었다. 제1군단은 낙동강방어선의 중동부전선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제1군단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10월 1일 북진작전으로 각각 전환했다. 제1군단은 수도사단과 제3사단을 배속받아 작전을 수행했다. 제3사단은 동해안을 따라 포항-영덕-강릉-양양-고성-통천을 거쳐 10월 10일 원산, 17일 함흥을 각각 점령하고, 계속 함경북도 길주, 혜산진 방향으로 북진했다. 제1군단은 제3사단을 따라 진격하면서 양양-원산-함흥으로 이동했다.
야공단은 전방 사단 지원과 군단 후방지역작전을 위한 도로 및 교량 보수 임무를 주로 수행하면서, 때로는 후방지역에 잔류한 잔적을 소탕하는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 이등상사는 앞장서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군단 작전에 기여했으나, 10월 27일 원산 부근 주보급로 보수 작업 중에 적의 습격으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배현 이등상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54421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31판-1면-23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0-ㅌ-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