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배주(李培周)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56448
  • 전몰일자 : 19520711

공훈사항

이배주 하사는 1931년 6월 27일에 전라북도 완도군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10월 27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배주 하사가 부대에 전입했던 11월 하순, 제6사단은 백암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인 10월 13일에 사단은 백암산 방어진지 전방의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기 위해 주요 감제고지를 공격하여 탈취했다. 당시 제2연대는 전방연대를 후속하다가 10월 16일에 전방연대를 초월 공격하여 중공군을 격파하고 10월 21일에 최종목표인 교암산(770고지)까지 탈취했다. 이후 제2연대는 10월 30일에 교암산 방어지역을 미 제24사단에 인계하고 사단 예비가 되었다.
제6사단은 1952년 1월 10일에 미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이후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부근의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 일부를 인수했다. 4월 5일부로 국군 제2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되었다. 이배주 하사는 장병들과 함께 봉화산(477고지) - 교암산(770고지)을 잇는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주간에는 수색정찰과 방어진지 보강, 야간에는 매복작전에 집중했다. 이후 큰 전투는 없이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배주 하사는 1952년 6월 포로교환문제로 교착된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적인 작전을 하라는 상급부대 명령에 의해 장병들과 함께 6월 12일에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금성천 북동쪽 A, B고지)에 대해 공격하여 6월 15일 탈취했다. 적의 계속된 역습으로 전투는 그치지 않았다. 이 무명고지는 감제 및 관측하는데 주요한 지형이라 서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병들은 적이 역습할 때마다 강력한 화력지원 하에 전초진지를 사수하여 격퇴했다. 적들은 7월 4일에도 공격을 했고, 11일에도 공격하여 무명의 감제고지를 탈취하고자 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서 진두지휘하며 용감하게 싸워 적의 공격을 격퇴했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배주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2370육)를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ㄲ-03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