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배은(李培殷)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92932
  • 전몰일자 : 19511110

공훈사항

이배은 일병은 1923년 3월 15일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생하였다. 이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일병은 1951년 3월 5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3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제9사단은 1951년 6월 24일 새벽, 고지 탈환을 위해 3개 방향에서 일제히 포위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고지를 점하고 있는 중공군이 증강된 병력으로 완강하게 저항함에 따라 철수하여, 전력을 정비한 후 고지 정상을 탈환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빼앗긴 고지를 되찾기 위해 1951년 6월 26일 새벽을 기하여 기습공격을 가해 왔다. 사단은 맹렬한 포 지원으로 교차 사격을 하였으나 8부 능선으로 철수하여 부대를 정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제9사단은 1951년 7월 말까지 계웅산을 중심으로 한 김화지구전투에서 수차례에 걸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격퇴했다. 아군은 1951년 10월이 되자 적군이 휴전회담을 제의한 이유가 전력 정비를 위한 시간 확보에 있음을 간파했다.
이에 일명 ‘코만도 작전’이라는 추계공세를 대대적으로 펼치게 되었다. 이때 제9사단은 1951년 10월 5일부로 다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10월 17일에 미 제3사단이 맡고 있던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의 방어진지를 인수하여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 휴전회담이 진행되어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 속에서 전초진지를 탈취하기 위한 소규모 전투와 수색정찰이 진행되었다. 한편 휴전회담장에서는 유엔군과 적군이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회담의 쟁점은 군사분계선을 정하는 일이었다.
제9사단은 1951년 11월 3일부터 281고지, 395고지 등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한편 휴전회담장에서는 유엔군과 적군 측이 서로의 제안에 상대방의 제안을 일정 정도 포함해 가면서 협상을 진행하여 마침내 1951년 11월에 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정하기로 합의했다.
이 일병은 전초진지 쟁탈전에서 앞장서 돌격을 감행하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951년 11월 10일 끝내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배은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8-ㄱ-09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