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배영(李培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1603853
  • 전몰일자 : 19510614

공훈사항

이배영 일등상사는 1924년 11월 30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혼란하던 1948년 6월 12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 발발 이후 이배영 일등상사가 전선에 재배치될 당시 원산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를 시작하게 되자 함경도 지방의 많은 주민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1950년 12월 9일을 전후하여 성진, 함흥, 흥남, 원산 등의 항구에는 피난민들로 큰 혼잡을 빚었다. 이 일등상사와 연대병력은 수송 수단이 허용하는 대로 가능한 많은 피난민을 후송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 길주에서 북한군이 반격해 오자, 12월 14일 함흥과 흥남으로 철수하였다.
이배영 일등상사와 연대는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1951년 1월 3일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강릉에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그와 장병들은 3월 26일 제2차로 38도선을 돌파한 후 계속 진격하여 4월 15일에는 캔자스선의 동단 남가리로 진출하였다. 5월 6일 중공군 제6차 공세가 시작되어 설악산 부근의 연대 주저항선이 돌파되면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이 일등상사와 연대 장병들은 당정곡-칠절봉에 배치되어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위하여 진지공사에 주력하면서 전방 지역에 대한 위력수색을 실시하였다. 6월 3일 오후 3시에 북한군 1개 중대규모가 선제 기습공격으로 이 일등상사와 연대병력이 방어하고 있던 칠절봉 부근 주저항선 돌파를 기도하였으나 격퇴되었다. 이어 9일과 10일에도 북한군의 공격은 향로봉 부근으로 계속되었다. 12일을 기하여 열흘 동안의 격전을 일단락 짓고 향로봉은 물론 북한군 거점이었던 산두곡산과 향로봉 서쪽의 940고지마저 수중에 넣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배영 일등상사는 1951년 6월 14일 고성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배영 일등상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3015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5-ㄹ-00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