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배근(이배근)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5704882
  • 전몰일자 : 19510211

공훈사항

이배근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출생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8월 25일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입대했을 당시 제8사단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에 지연전을 펼치면서 낙동강까지 후퇴하였다. 그 후 9월에는 반격을 개시하였고 10월에 38도선을 돌파하여 북한지역까지 진출하였으나 10월 말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 일병이 속한 제8사단은 1950년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구장으로 진출해 초산으로부터 철수하는 제7연대에 대한 엄호에 임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3일 맹산에 전방지휘소를 개설하고 묘향산 동쪽의 영원과 맹산 지역에서 중공군 제42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방어 전투에 돌입했다. 제8사단은 중공군의 제1차 공세 이후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조직적인 공격을 하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한다는 계획에 따라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계획하고 북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병력이 계속해서 증강됨에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2월 1일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상동에서 38도선을 향하여 철수를 거듭하여 율리에서 수안을 거쳐 신계, 시변리를 경유해 토산에 이르렀다. 이어서 제8사단은 38도선의 바로 북방에 위치한 520고지의 점령을 위해 연천에 집결해 520고지를 향하여 돌진했다. 하지만 중공군에 비해 열세한 화력과 적군의 우회 침입 작전에 직면하여 위기에 놓였으나 필사적으로 포위를 뚫고 철수하는 데 성공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강원도 화천군 내평리에서 적군을 대적했으며, 정면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이 진격해 왔다. 장병들은 진지 구축도 불가능한 혹한에서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며 적에 대한 지연전을 실시했다.
아군은 전력을 가다듬어 2월 5일부터 국군 제5사단과 함께 홍천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지만 홍천군 삼마치 고개 및 오음산 고지를 선점한 중공군 제198사단의 저항에 봉착했다. 이후 국군은 5일간 제병협동작전을 실시하였으나 전선돌파에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특히 제8사단의 피해가 컸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1951년 2월 11일 강원도 횡성군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배근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3판-40면-2189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ㅈ-08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