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방호(李芳鎬)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1705338
  • 전몰일자 : 19500730

공훈사항

이방호 이병은 1927년 11월 25일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1949년 8월 4일 제6사단 제7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곧 제3사단 제23연대로 전속되었다. 제23연대는 경남·북 일대에 침투한 북한 유격대 토벌부대로 투입되었고, 이 이병은 1950년 3월 27일까지 향로봉, 밀양, 양산, 언양, 울산 일대의 공비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사단은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제22연대와 제23연대의 대전차포중대 및 2개의 중화기중대를 서울로 출동시키고, 부산의 제23연대만을 가지고 전투에 대비하게 되었다. 6월 27일 북한군이 강릉을 점령하고 제8사단이 제천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자, 동해안 축선은 제3사단의 전투정면이 되었다. 제3사단은 6월 28일 “울진에서 적을 포착 섬멸하라”는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29일 포항-영덕-평해를 거쳐 울진 남쪽의 왕피천에 도착했다.
연대는 7월 1일 새벽에 울진 시가지를 공격, 경미한 적의 저항을 물리치고 이를 탈환한 후 동해 가도 상의 138고지와 남대천 및 왕피천 일대에 부대를 종으로 배치하여 방어태세로 전환했다. 지원화기라곤 1개 중화기중대의 81mm 박격포 8문과 각 중대의 60mm 박격포 2문밖에 없는 연대는 1일 북한군 제766부대의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하였으나, 압도적으로 우세한 북한군의 공격에 밀려 7월 2일 영해 방면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지연전을 계속한 연대는 7월 17일 경북 영덕 북방의 구미리-화림산-매정동을 잇는 선상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연대는 19일 적의 기습적인 배후 공격으로 영덕을 탈취당했으나, 21일 역습을 실시하여 영덕을 탈환했다. 그러나 23일 적이 배후로 침투하여 공격함에 따라 연대는 또다시 영덕을 내주고 그 직후방의 208고지와 207고지-181고지 선 부근으로 후퇴하여 이 선에서 급편방어진지를 편성하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이어갔다. 이 전투에서 이 이병은 끝까지 진지를 지키며 분전하다 중상을 입고 제2육군병원(대구에 위치)으로 후송되었으나, 7월 30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방호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3묘역-2판-1408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0-ㅍ-07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