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방택(李芳澤)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31

공훈사항

이방택 경사는 1920년 7월 4일 전남 장흥군 장흥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5년 10월 20일 경찰에 입문했으며, 전몰 당시 전남도경 장흥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완도 조약항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4일 한강 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장흥경찰은 영암-장흥, 보성-장흥을 잇는 주요 보급로 경비,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이 계속 남진함에 따라 7월 20일 전남도경은 보성으로 이동하였으며, 영암·광산·나주·무안의 경찰병력이 속속 장흥에 집결하였다. 장흥에 집결한 경찰부대는 장흥을 중심으로 장흥-강진에 저지진지를 구축하여 목포 쪽으로부터의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보성에 전초진지를 설치하였다.
7월 25일 보성에 진입한 적이 휴식 중이라는 정보에 따라 7월 26일 미명을 기하여 구서칠 중화기부대와 장흥·강진부대 등 250명은 3개 방면에서 적을 포위 기습하여 적 사살 30명, 생포 1명, 사이드카 2대, 따발총 2정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적이 계속 남진하자 전남 서남부지역 경찰부대들은 7월 27일 강진부대에 이어 장흥·보성·화순부대가 완도로 철수하여 9월 20일까지 해상유격전을 전개했다. 이 기간 중 장흥경찰부대는 유격전을 펼치며 적 175명 사살, 아군 86명 구출, 양민 330명을 구출하는 커다란 전과를 거두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과 유엔군이 총반격을 개시함에 따라 장흥경찰도 9월 24일 장흥경찰서를 수복하고 잔적 소탕, 주보급로 경비, 치안유지 임무를 수행했다. 12월 31일 완도에 공비들이 양민들을 학살하고 식량을 약탈하는 일이 발생하자 장흥·강진 경찰이 투입되었다. 이날 이 경사는 완도 조약항에서 공비를 격멸하기 위해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방택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ㅎ-04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