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방우(李芳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5202721
  • 전몰일자 : 19500701

공훈사항

이방우 일등중사는 1929년 10월 13일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서 출생하였다. 1948년에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1948년 9월 10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방우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사단은 청단에서 고랑포까지 94㎞에 이르는 광정면의 38도선 경계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 일등중사가 진지구축에 열중하고 있던 시기의 상황은 긴박하였다. 북한군의 38도선 도발이 계속되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면서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이 일등중사는 즉각 방어전투에 투입되었다. T-34 전차를 앞세워 공격을 시작한 북한군은 그날 아침 개성을 점령하고 임진강 방향으로 공격을 확대하였다. 북한군은 임진강을 도하 한 후 문산-서울 축선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북한군의 문산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다.
이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소규모로 분산된 채 파평산 방향으로 철수하면서 저항을 계속하였다. 이어 26일에는 파평산 방어진지의 노출된 동측방으로 접근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해 주저항선이 무너졌다. 이후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사단의 주공이 32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문산리를 위협하였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그와 장병들은 27일 야음을 이용하여 봉일천 북쪽 위전리-도내리를 연하는 최후저지선까지 결전을 펼치면서 철수하였다. 29일 북한군의 주력이 전방 주저항선을 돌파하고 문산-의정부 선까지 진출하자 이 일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봉일천과 창동선에 급편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서울 방어를 위한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였다.
이 일등중사와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이방우 일등중사는 1950년 7월 1일 인천 부근 전투에서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방우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4판-2면-19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0-ㅇ-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