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방우(이방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4942
  • 전몰일자 : 19500925

공훈사항

이방우 일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8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연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포항 북방의 자명동-111고지-96고지-소티재-두호동 선에 급편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북한군 제5사단과 혈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9월 2일을 기해 총공격(9월 공세)을 개시했다. 제3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5사단은 제5공격집단의 조공으로 2일 새벽 3시를 기해 포항과 영일 비행장을 목표로 일제히 공격을 전개했다. 제3사단은 좌전방에 사단에 배속된 제10연대를, 중앙에 제22연대를 배치했다. 그리고 제23연대를 우전방의 93고지-환호동 일대에 배치했다.
9월 5일 새벽 적 제5사단은 공격을 감행했고, 연대는 3시간여에 걸쳐 완강히 저항했으나 결국 방어선이 붕괴되어 형산강 변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 최후 위기를 극복하고 총반격 태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이때 적 제5사단도 쉽게 물러나지 않고 강력하게 저항을 하면서 지연전을 전개했고, 아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물리치고 9월 22일 흥해까지 진격했다. 이 반격전에서 이 일병은 신병임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돌격하다 흥해 근처 고지전에서 안타깝게도 적탄에 중상을 입고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9월 2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방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3판-7면-22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3-ㅍ-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