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방열(李芳烈)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36051
  • 전몰일자 : 19530726

공훈사항

이방열 하사는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하사는 1952년 6월경에 입대 후 제8사단 제16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의 부대 전입 후, 적군은 휴전을 앞두어 철원평야를 빼앗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고지를 공격해왔고 이에 국군은 고지사수를 위해 치열한 방어전을 전개했다. 제8사단 제16연대는 1953년 2월경, 강원도 김화군 수도고지 일대에 주둔해 있었다. 수도고지는 1952년 9월간 국군수도사단과 중공군 간에 수차례 공방이 벌어졌던 해발 600m의 고지이다.
제8사단의 배치 당시 수도고지는 소강상태였다. 적의 공격 징후를 5월 초순부터 간파한 제8사단은 전초진지 경계를 엄중히 하는 동시에 수색 정찰 활동을 증강시키고 예비대를 전방으로 이동시켰다. 제8사단의 예측대로 1953년 5월 13일부터 중공군이 공격해왔다. 적군은 막강한 화력으로 제8사단의 주저항선 및 후방에 걸쳐 포격을 가했고 피아간에 수류탄전과 치열한 사격전이 전개되었다. 이는 국군의 전초진지인 마제형 진지를 점령하여 확보함과 동시에 교란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적군의 공격에 한때 제8사단의 진지가 피탈되었지만 1953년 5월 18일을 기하여 역습을 개시해 적군의 전초기지를 대다수 파괴하며 북한군으로부터 진지를 사수할 수 있었다.
이후 제8사단은 1953년 6월 12일 중공군의 연이은 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수도고지를 피탈 당했으며 7월에는 중공군이 정전을 앞두고 공세를 실시했다. 이들은 5개 군을 동원해 국군 6개 사단이 배치된 중부전선 금성지구를 공격했다. 금성지구의 전방에는 제8사단과 제6사단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의 전방으로 중공군 2개 군 이상이 위치했다. 당시 제16연대는 교암산 후방에서 예비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제8사단은 금성지구의 좌·우측방으로 중공군이 우회하며 포위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16연대는 제10연대, 제21연대의 철수를 엄호하며 금성천 남측 방면으로 철수하는 동시에 주포리-백암산 일대에 방어선을 전개하여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이 하사는 1953년 7월 26일 적의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방열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4판-6면-12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6-ㄹ-07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