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방수(李芳秀)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0303560
  • 전몰일자 : 19530720

공훈사항

이방수 이등상사는 1933년 7월 4일에 경상남도 통영군 일문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1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제1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방수 이등상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0년 11월 초순, 제11사단은 전남 남원에 지휘소를 위치시키고 지리산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4월 중순에 강원도 양양 북쪽으로 이동하여 이곳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 4월 공세와 5월 16일에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를 맞아 진격과 철수를 거듭하여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어 5월 22일부터 반격작전을 개시하여 강릉-양양-간성-거진 방향으로 진격하여 6월 중순에 거진-건봉령 선을 확보하였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공산군은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면서 군사력보강에 집중했다. 그렇지만 전초진지 쟁탈전은 계속되었다. 이후 제13연대는 11월 17일에 수도사단으로부터 월비산 방어지역을 인수했다. 이날 북한군 제9사단은 빼앗겼던 월비산을 되찾기 위해 부대가 교대되는 취약시기를 놓치지 않고 11월 18일에 공격했다. 연대 장병들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11월 24일에 빼앗기고 351고지로 철수했다.
이방수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11사단은 1952년 1월 중순에 작전지역을 제5사단에게 인계하고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에 전념했다. 다시 1952년 3월 30일에 국군 제1군단에 재배속되어 건봉령 일대의 방어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전선의 소강상태는 1953년도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사단은 6월 10일에 방어진지를 제21사단에 인계하고, 간성에서 화천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당시 중공군들은 휴전협정이 타결되기 전에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7월 13일 야간에 중동부전선의 교암산을 공격했다.
이방수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13연대는 인접의 제20연대와 함께 7월 15일부터 적근산-삼현지구로 반격하여 7월 19일에는 주파리-적근산까지 진출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7월 20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방수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7192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44판-7면-04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ㅊ-09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