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발택(李撥澤)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802375
  • 전몰일자 : 19501210

공훈사항

이발택 이등상사는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이등상사는 1949년 12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8사단은 강원도 인제군으로 양양군에 이르는 동해안지역 경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기습남침을 감행했다. 이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8사단은 북한군의 전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연전을 펼치면서 경상북도 지역으로 후퇴를 하였다. 이후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을 개시하여 1950년 10월 8일 38도선을 통과하여 북한지역 깊숙이 진출하였지만 1950년 11월 9일부터 대대적인 중공군의 공세에 직면해 있었다.
이에 제8사단은 묘향산 동쪽의 영원과 맹산 지역에서 방어태세를 강화하여 중공군 제42군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유엔군사령부는 중공군의 제1차 공세가 끝나고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또다시 조직적인 공격을 가해오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시키는 계획을 수립해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단행했다. 그중 제8사단은 형제봉-관리 전투에 참가하여 대규모의 중공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진지의 일부를 잃고 맹산 북쪽의 소가래봉으로 탈출했다. 탈출을 완료한 제8사단은 매재령의 차단 진지를 돌파한 후 북창을 경유해 가창으로 철수하기에 이른다.
이때 맹산이 위협받게 되어 제8사단은 측방으로부터 침투하는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지연전을 펼쳤다. 그 결과 제8사단은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삼동에서 38도선을 향해 철수를 했고 율리, 수안, 신계, 시변리를 경유하여 토산을 향하여 진격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7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방어 전투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제126사단을 동부 산악지대로 우회시켜 맹산 동북쪽 애창천 계곡, 즉 사단의 배후로 침투시켰다.
하지만 수색 정찰로 이를 확인한 제8사단은 연대의 애창 방어진지를 우회하여 맹산에 집결한 중공군과 교전하였고 그 결과 중공군과 제8사단 모두 일부 병력이 분산되었다. 이후 맹산이 위협을 받자, 제8사단은 영원 지역에서 철수하여 측방에서 침투하는 중공군을 저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이등상사는 1950년 12월 10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영달에서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발택 이등상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0-ㅎ-02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