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발영(李撥英)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36610
  • 전몰일자 : 19510418

공훈사항

이발영 상병은 강원도 춘천시 온의동에서 1951년 4월 18일에 출생하였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상병은 1950년 6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상병에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 제5사단은 엄청난 포병 화력의 지원을 받으며 7번 도로 축선에 투입하여 주문진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이에 강릉에 주둔해 있던 제8사단은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지연전을 펼쳤지만 적의 화력에 주문진을 상실하고 철수를 시작했다.
이후 반격 준비를 마친 국군은 1950년 9월 국군 총반격작전을 통해 11월 3일 서울에 도달하고 11월 9일 덕천 탈환 후 구장으로 진출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지연전을 펼치며 적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이 상병이 속한 제8사단은 중공군의 제1차 공세 이후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조직적인 공격을 하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한다는 계획에 따라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계획하고 북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병력이 계속해서 증강됨에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했다.
제8사단은 1950년 12월 1일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상동에서 38도선을 향하여 철수를 거듭하여 율리에서 수안을 거쳐 신계, 시변리를 경유했다. 이어서 제8사단은 38도선의 바로 북방에 위치한 520고지의 점령을 위해 연천에 집결해 520고지를 향하여 돌진했다. 하지만 중공군에 비해 열세한 화력과 적군의 우회 침입 작전에 직면하여 위기에 놓였으나 필사적으로 포위를 뚫고 철수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1년 2월 5일부터 국군 제5사단과 함께 홍천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홍천군 삼마치 고개 및 오음산 고지를 선점한 중공군 제198사단의 저항에 봉착했다.
국군은 5일간 제병협동작전을 시행하였으나 전선돌파에 실패했고 특히 제8사단의 피해가 컸기 때문에 제8사단은 육군본부 예비대로 편성되어 후방 경계 임무에 투입되었다. 1951년 4월 강원도 횡성지구에서 철수하여 부대를 재정비한 후 공비준동지역인 전라북도 전주로 이동한 후 부안, 금산지역에서 공비토벌전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 상병은 1951년 4월 18일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발영 상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ㄱ-00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