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반사(李叛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1501012
  • 전몰일자 : 19500727

공훈사항

이반사 일등상사는 1927년 12월 25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1948년에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1948년 12월 13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반사 일등상사는 파평산 철수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일등상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0년 6월 26일 파평산 방어진지의 노출된 동측방으로 접근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해 주저항선이 무너졌다. 이후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사단의 주공이 32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문산리를 위협하였다. 이어 29일 북한군의 주력이 전방 주저항선을 돌파하고 문산-의정부 선까지 진출하자 이 일등상사와 장병들은 봉일천과 창동선에 급편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서울 방어를 위한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였다.
이반사 일등상사와 연대병력은 북한군 제3사단이 7월 4일 새벽 공격을 개시하여 금곡리 부근으로 밀어붙이고 풍덕천-수원 도로를 따라 남진하자 일제사격으로 이들을 한때 격퇴하기도 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해 방어선이 돌파되고 결국 7월 4일 평택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일등상사와 연대병력은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105mm 곡사포의 지원사격하에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함으로써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북한군 제15사단은 새벽 무렵 음성에 포격을 집중하면서 2개 연대병력을 각각 8대의 장갑차의 지원하에 연대정면으로 공격하였으나 이 일등상사와 연대 장병들의 집중적인 저지사격과 역습에 의해 다시 저지되었다. 전장 정리를 마무리한 후 24일에는 제17연대와 함께 상주로 이동하였다. 이후 제1사단은 제6사단이 고전하고 있는 함창으로 전진하였다.
이 일등상사는 오직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사기로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반사 일등상사는 1950년 7월 27일 함창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반사 일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0-ㅅ-07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