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화(李敏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60023
  • 전몰일자 : 19530720

공훈사항

이민화 일등중사는 1928년 2월 23일에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10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제2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민화 일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2월 중순, 제11사단은 건봉산-향로봉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얼마 전 제20연대는 수도사단이 방어하던 월비산(459고지)을 11월 17일에 인수했으나, 북한군 제9사단이 바로 다음 날인 11월 18일에 공격하여 11월 24일까지 수차례 공방전을 펼쳤다. 결국은 연대가 월비산에서 철수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쌍방은 방어진지 보강에 힘썼다.
이민화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1952년 4월 15일에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동하여 경비임무를 수행하고, 7월 11일에 양양에 위치한 사단으로 다시 복귀하여 건봉산 일대의 방어지역을 담당했다. 그리고 전선은 전투상황이 없이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제11사단은 1953년 6월 10일에 방어진지를 제21사단에 인계하고, 화천 일대의 산양리, 하로곡, 동지화로 이동하여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사단이 화천 일대로 이동한 것은 이 일대에 중공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 대비하는 차원에서 이루진 조치였다.
중공군은 휴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7월 13일 야간에 중동부전선의 금성돌출부를 확보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이에 제2군단 예하 부대들은 주파령에서 적근산을 잇는 미주리선으로 후퇴했다. 이민화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7월 14일에 주파리-적근동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점령하고 군단의 철수를 엄호했다. 그리고 연대는 7월 15일에 적근산-삼현지구에 대한 반격작전으로 7월 18일에 602고지를 탈취하고, 금성천 만곡부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함으로써 백암산 정면으로 침입한 중공군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7월 20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화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장병2묘역-130판-1583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4-ㄲ-04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