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호(李敏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801552
  • 전몰일자 : 19501124

공훈사항

이민호 하사는 충청남도 아산군 인주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 활동으로 사회가 혼란스럽던 1949년 1월 18일에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제17연대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동년 6월 20일에 서울 용산으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에 예속되었고,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제2연대로부터 38도선 경계임무를 인수했다.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병력의 열세와 지형의 불리한 조건에서도 용감하게 싸웠으나 26일 아침에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대전의 육본경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스미스특수임무부대가 투입될 때 갈곶리 전투에 참가하고, 이후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보은-상주 일대에서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안동에서 전투를 치룬 후 육군 예비가 되었다가 8월 중순에 포항지구전투사령부 소속으로서 낙동강방어선상의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2일까지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민호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인천상륙작전에 육군 중에서 유일하게 선발된 부대였다. 연대는 안강전투를 마치고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그리고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한 후에 영등포 남쪽으로 기동하여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했다. 이후 유엔군의 주력이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감행할 때, 연대는 서울에 남아 주요시설에 대한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제17연대는 11월 7일에 국군 제2사단이 재창설될 때에 그 예하 부대로 편성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청천강을 건너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을 때, 북한군 패잔병들은 포천-철원-평강 일대에서 후방 교란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제2사단은 포천-평강 일대에서 유엔군의 후방을 교란하던 북한군 잔적소탕을 위해 투입되었다.
이민호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포천지역 일대에서 북한군 패잔병에 대한 소탕작전과 유엔군 병참선 경계작전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때 북한군 패잔병들은 단순한 공비가 아니라 지휘체계가 갖추어진 대규모 부대로서 중공군의 침공에 호응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교란 활동을 실시했다. 그가 소속된 대대는 11월 24일에 북한군 패잔병을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호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2판-7면-23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7-ㅍ-05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