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호(李敏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1995
  • 전몰일자 : 19530205

공훈사항

이민호 일병은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곤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했던 1950년 12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1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민호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월 중순, 제6사단은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서울 창동을 거쳐 경기도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후 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 중공군의 4월 공세 및 5월 공세를 격퇴하고 5월 24일부터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28일에는 화천저수지까지, 6월 15일에는 백암산까지 진출하여 철의 삼각지대의 우측 지역인 등대리-단거리-수리봉을 연하는 선을 확보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1951년 가을이 되면서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유엔군의 작전방침에 의거 공세작전을 펼쳤다. 특히 방어진지 전방의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기 위해 10월 13일부터 정면의 중공군을 격파하면서 진격하여 21일에는 교암산-송동리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에 집중하다가 3월 22일에 재배속되어 전방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민호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사단 예비로 활동하다가 5월 22일에 제7연대가 담당했던 교암산과 전초기지인 575고지를 인수했다. 중공군은 제19연대의 전초기지가 된 575고지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5월 31일과 6월 14일 두 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탈취했으나, 그때마다 연대 장병들은 역습으로 되찾았다. 이후 연대는 사단 예비가 되어 노동리 일대에 위치하다가 10월 5일부로 제2연대로부터 전방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10월 9일에 중공군으로부터 금성 부근의 주요감제고지에 대해 공격받았으나 격퇴했다.
이후 전선 상황은 1953년이 되면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으며,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 및 매복작전에 집중했다. 이민호 일병이 소속된 소대는 2월 5일에 작전지역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정찰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5-ㅎ-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