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형(李敏滎)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5352
  • 전몰일자 : 19500920

공훈사항

이민형 일병은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낙동강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1950년 8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했다. 당시 전황이 워낙 급박했던 관계로 이 일병은 소총 분해결합 정도의 간단한 기초군사훈련만 받고, 8월 20일 대구에서 재창설된 제7사단 제3연대에 곧바로 배치되었다. 제3연대는 육군직할 유격대대를 모체로 대구 대성국민학교에서 창설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과 뺏고 뺏기는 혈전을 거듭하고 있었고, 특히 북한군 제12사단이 기계, 안강을 돌파하여 경주를 위협함에 따라 이 지역 방어를 맡고 있던 수도사단이 위험에 처해 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제7사단 제3연대(9월 3일)와 기갑연대(9월 4일)를 수도사단에 배속했다.
연대는 9월 3일 열차 편으로 긴급히 이동하여 안강읍 사방동 일대에 집결했고,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그 서측의 무릉산 일대에 곧바로 배치되었다. 9월 2일 개시된 북한군 9월 공세에서 제12사단은 총공격을 개시해 안강을 점령하고 경주를 목표로 남진했다. 이때 좌측의 제8사단이 영천을 탈취당할 위기에 처했고, 우측의 제3사단도 포항을 빼앗김에 따라 이 지역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견부인 무릉산과 곤재봉 일대를 사수하느냐가 작전의 성패에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적은 9월 6일 연대가 배치된 무릉산 일대로 후방침투와 정면공격을 병행하여 기습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연대 장병들은 사방동으로 분산 철수했으나, 기갑연대가 역습을 실시하여 다시 진지를 탈환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수류탄전과 백병전을 거듭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진지를 지켜내고 13일 결국 적을 격퇴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의 마지막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9월 15일 단행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유엔군은 9월 16일 낙동강방어선에서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적도 쉽게 물러서지 않고 강력하게 저항했다. 무릉산전투에서 이 일병은 신병임에도 불구하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9월 20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형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49-ㄴ-04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