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한(이민한)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301855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민한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칠성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22일에 제주에 설치된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민한 일병이 전입했던 시기인 9월 초에 수도사단은 낙동강방어선에서 조국의 운명을 건 혈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수도사단이 담당하고 있던 낙동강방어선의 안강 지구에 투입되었다. 낙동강방어선전투는 안강 일대에서 유격대로 증강된 북한군 2개 사단의 침공을 격퇴한 방어 전투였다. 이는 단순히 방어전투라기보다는 핵심지역을 낮에는 국군이 점령하고 밤에는 북한군이 점령하는 공방전의 연속이었다. 계속되는 공방전에서 피아간 사상자가 크게 발생하였다.
이 일병과 사단 장병들은 이후 계속된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낙동강 방어선에서 치열한 방어전을 벌였다. 또한 수도사단은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며 청송-평창-양양방향으로 진격하였다. 전쟁 초기 기세등등했던 북한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민한 일병을 비롯한 장병 모두는 용기백배하여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하였다. 이어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한 후 10월 10일에는 원산을 점령한 후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의 개입과 기습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는 11월 말 길주에서 북한군이 반격해 오자, 12월 14일 함흥과 흥남으로 철수하던 중 벌어진 치열한 교전에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17일 흥남에서 묵호항으로 해상 철수하였다.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1951년 1월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한 후 북한군과 벌어진 치열한 교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이 일병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하였다.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민한 일병은 1951년 1월 1일 양양 부근 전투에 참가하여 부여된 작전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던 중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88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09-ㅂ-03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