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하(李敏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5774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민하 일병은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0년 초에 수도사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소총병으로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수도사단은 1949년 6월 20일에 서울 용산에서 창설되었고, 경비임무를 수행하면서 유사시 전방지역으로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에 기습적으로 침략하자, 이민하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제7사단이 담당하고 있던 동두천 축선으로 증원되었다.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40여 대의 T-34 전차를 투입해 공세를 감행하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대전차특공대를 편성하여 육탄공격을 시도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당시 국군이 보유하고 있던 대전차무기인 2.36인치 로켓포는 북한군의 T-34 전차를 관통할 수 없었다. 당장 서울이 위태로워졌다. 이에 육군본부는 서울방어를 위해 수도권의 부대는 물론 후방지역의 부대까지 모조리 서울 북방에 투입하도록 명령하였다. 북한군은 그날 오전 초성리를 돌파해 동두천으로 진격하였다. 이민하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의정부를 거쳐 창동 방어선으로 철수하면서 전투를 계속하였다.
이민하 일병과 연대병력은 주저항선인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의 진지로 철수하여 남하하는 북한군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면서 진지를 사수하고 있었다. 그는 북한군의 보전협동부대를 저지하였으나 서측으로 우회한 북한군의 위협을 받아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연대는 탄약을 재보급받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군 제107전차연대 소속의 전차 수십 대를 앞세운 북한군의 총공격을 받아 소요산 일대의 주저항선이 돌파되기 시작하였고, 10시간에 걸친 혈전에도 불구하고 동두천 방면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민하 일병은 1950년 6월 25일 의정부지구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9판-7면-2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1-ㅊ-07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