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철(李敏哲)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12802
  • 전몰일자 : 19510520

공훈사항

이민철 중위는 경상남도 부산시 중구 대청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한 1950년 9월 18일, 부산 동래고등학교에 설치된 육군종합학교로 입교하여 6주간 소정의 군사훈련과정을 수료하고 10월 30일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으며,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민철 중위가 부대로 전입했던 11월 초순, 제6사단은 평남 개천에서 부대정비를 하고 있었다. 이후 유엔군은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했으나, 이번에도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되어 포위될 위험이 커서 38도선 부근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6사단은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이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시작했다. 이에 제6사단은 다음날인 1951년 1월 1일 야간에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그가 소속된 미 제9군단은 2월 11일에 시작된 중공군 2월 공세를 지평리-원주 선에서 격퇴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민철 중위가 소속된 제2연대는 반격작전 시에 북한강 남안의 가평-의암선까지 진출하고,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6일에 화악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 4월 공세로 후방이 차단되면서 큰 피해를 입고 가평 부근으로 철수했다가 4월 27일에 용문산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2연대는 용문산 전방의 전초진지를 점령했다.
제2연대 장병들은 5월 16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용문산 전방의 전초진지에서 전면방어로 사수했다. 적들은 전초진지를 주방어진지로 오인하고 모든 화력과 병력을 집중하여 공격했다. 이로써 제2연대는 전초진지에서 적 전투력을 소모시켜 사단 작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이민철 중위가 소속된 대대는 5월 20일 전초진지에서 적에게 큰 피해를 주며 방어진지를 지켰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장으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철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3묘역-4판-125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3-ㅇ-09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