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종(李民鍾)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200310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민종 일병은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2월 중순, 서울 용산의 수도여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9연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수도여단은 5월 12일부로 사단으로 승격하면서 제7사단으로 개칭되었고, 의정부로 이동했다.
이민종 일병이 소속된 제9연대는 포천으로 이동하여 제3대대에 38도선 경계임무를 담당하도록 하고, 제1·2대대는 문산 일대에서 교육훈련에 임하도록 했다. 당시 연대본부와 제1·제3대대는 의정부 북방 4km 지점인 금오리에 주둔하면서 교육훈련과 주방어진지인 천주산 일대에 대한 교통호와 산병호를 구축하였다.
이민종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침략한 당시에는 천주산 일대에서 교육훈련 중에 있었다. 이날 장병들은 연대장 명령에 따라 신속히 주방어진지를 점령했다. 한편 정면의 북한군 제3사단과 제4사단, 제105전차여단은 30여분에 걸친 포병사격으로 전방의 경계진지를 유린하고 전차와 보병으로 공격했다. 북한군 선두 전차 8대는 6월 25일 아침부터 아군의 보병 화력이나 105미리 포병사격에도 멈추지 않고 포천 방향으로 진출했다.
제9연대 장병들은 침략하는 북한군에 맞서 사격을 가하며 진출을 저지하고자 했으나, 적 전차는 큰 저항 없이 오전 11시에 포천을 점령했다. 이어 1시간 뒤에 적 보병부대는 아군부대가 배치된 천주산-가랑산을 포병사격과 함께 공격했다. 오후 2시경에 연대 주저항선이 무너졌으며, 북한군 보병부대는 4시경에 포천을 점령했다. 아군 장병들은 통신마저 두절 되어 각 대대 및 중대 단위로 분산하여 철수했다. 이날 이민종 일병은 천주산의 방어진지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종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1-ㄹ-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이민종 일병은 제11사단 직할로 분류되어 있으나 이 시기에 제11사단은 창설되지 않았음. 이에 당시 존재했던 제9연대로 분류했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