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제(李敏齊)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2503289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이민제 이등중사는 1929년 5월 6일 경기도 평택군 현덕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8년 12월 17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민제 이등중사는 청천강 남쪽의 신안주 부근에서 재정비를 완료한 사단 병력과 함께 11월 24일 북한군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은 그들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하여 교량을 파괴 시켰고, 또 도로상에는 도처에 120mm 박격포탄으로 만든 부비트랩을 매설하였다. 사단 공병이 이를 제거하는데 다소 시간이 지연되었으나 북한군의 저항이 경미하여 저녁 무렵에는 태천을 남쪽과 동쪽에서 포위하게 되었다.
이민제 이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12월 7일 사리원에서 남천으로 이동하여 구월산 일대에서 패잔병을 소탕하였다. 이후 위천리, 구화리 일대의 축차적인 지연 진지를 점령하여 아군의 철수를 엄호하면서 지역내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철수가 완료되자 14일에는 고량포-적성 일대에 배치되어 주저항선을 편성하였다.
이후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시작되면서 그가 소속된 사단은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한 후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 작전에 참전하여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그 후 이 이등중사는 사단 병력과 38도선 부근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였고 고양 임진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였다. 중공군은 또 한 차례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4월 22일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이 이등중사와 사단 장병들은 파평산에서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지연시켰다. 이 이등중사를 비롯한 장병들의 투철한 전투의지에 따라 중공군은 서울점령을 포기하고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전환하였다.
1951년 5월 16일 중공군이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지만 서부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따라서 사단은 임진강 일대에서 소규모 매복전투, 상대방의 첩보 및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적진정찰 등의 작전을 계속하였다. 매사에 적극적이었던 이민제 이등중사는 일부 병력과 정찰 활동 도중 매복해 있던 적의 기습사격을 받아 1951년 5월 18일 봉일천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제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5124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3-ㄲ-07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