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재(이민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15858
  • 전몰일자 : 19511124

공훈사항

이민재 하사는 1929년 2월 29일에 경상남도 통영군 항남면(現 통영시 항남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진행 중인 1950년 10월 20일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민재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많은 부대들이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하고, 12월 13일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고, 횡성 일대의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등에 투입되어 중공군 춘계 공세를 막아 내면서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했다. 5월 하순 공세로 전환한 사단은 군단의 우측 전방 부대로서 5월 31일에 중공군 제2군단을 추격하다가, 대규모 적에게 포위를 당하여 분산되어 철수하면서 소양강을 도하했다.
이어서 사단은 6월 4일 원통 북방 서화리 일대의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잇는 향해 공격하여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이민재 하사가 소속된 제36연대는 우측 전방부대로 향로봉 서쪽의 1,242고지-1,122고지-산두곡산 방향으로 공격하여 서화리 일대 고지들을 점령했다.
8월에 접어들어 美 제10군단은 강원도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연대는 8월 16일 오전 8시 부로 美 제2사단에 배속되었다. 연대는 캔자스선 진지를 감제하며 위협을 주는 양구 북방 983고지-940고지-773고지를 잇는 ‘피의 능선(Bloody Ridge)’을 美 제9연대와 공격하여 9월 7일 목표를 완전히 탈취했다.
‘피의 능선’을 점령 후 제36연대가 복귀한 제5사단은 연대별 또는 3개 연대로 양구 일대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를 10월 9일까지 공격하여 세 번씩이나 목표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적의 역습에 이를 상실하고 결국 사단은 10월 14일 가칠봉 부근 전투를 종결하고 부대 재편성에 착수했다. 사단은 10월 20일에 이 전선을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에 전념했다. 이민재 하사는 양양에서 분대원을 통제하며 부대정비 중 11월 24일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재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6판-2면-00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ㄲ-056)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