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재(이민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20178
  • 전몰일자 : 19510606

공훈사항

이민재 하사는 1933년 2월 19일에 경상남도 김해군 대동면 대감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3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24사단으로 배치되었다.
이민재 하사가 전입했던 10월 중순, 미 제24사단은 10월 8일부터 문산 일대에서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10월 19일에 온정을 점령하고, 20일부터 평양에서 미 제1기병사단을 초월하여 청천강 선으로 진출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0월 24일과 11월 24일에 실시된 두 번의 유엔군 총공세에 참가했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의 기습으로 우측방 부대가 먼저 무너지고, 이에 후방차단을 염려하여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결국은 사단은 평양방어선으로 철수했다가 12월 6일에 평양에서도 철수하여 12월 13일에 38도선 상의 김화-포천-의정부 축선에 배치되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주공을 서울로 향해 총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개시했다. 유엔군은 적에게 최대한 살상을 가하면서 평택-삼척 선까지 철수토록 명령했다. 이민재 하사가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중공군의 공격을 맞아 지연전을 실시하며, 1951년 1월 4일에 의정부에서 서울을 거쳐 장호원 일대로 철수했다가 2월 초에 양평 서측의 양자산(704고지)으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미 제24사단은 2월 1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격퇴하고, 2월 21일에 반격(일명 Killer작전)으로 전환했다. 사단은 3월 7일부터 본격적인 반격작전(일명 Ripper작전)으로 진격하여 3월 31일에 가평을 탈환했으며, 이후 계속된 반격작전(일명 Rugged작전, Dauntless작전)으로 4월 9일에 화천-광덕산을 연하는 선에 도달했다.
이민재 하사가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맞아 가평 남쪽의 북한강 동쪽까지 철수했다가 5월 24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여 5월 31일에 화천호를 탈환하고, 이후 군단의 예비가 되어 사창리 부근에 집결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6월 6일에 사창리 일대에서 수색작전을 하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4면-871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8-ㅇ-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