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재(李珉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2330
  • 전몰일자 : 19500930

공훈사항

이민재 일병은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11월 초순에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본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2사단 통신대에 배치되었다.
이민재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인 12월 중순, 제2사단은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 선의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1951년 1월 1일에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가평을 거쳐 충주로 이동했다가 다시 안동 일대의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로 이동하여 후방지역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그리고 사단은 후방지역작전을 완료한 후인 4월 28일에 청평 일대의 전방지역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그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사단과 연대 간의 통신지원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사단은 5월 16일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하고, 24일부터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38도선을 전술적으로 방어하기 용이한 육단리-적근산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그 후 전선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던 중 사단은 유엔사의 작전방침에 따라 8월 초에 방어선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탈취하기로 하고, 8월 2일에 공격을 개시하여 745고지를 탈취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필사적인 야간 역습으로 인해 고지는 8월 8일에 다시 적의 수중에 넘어갔다. 이후 사단은 9월 1일에 다시 745고지를 공격하여 9월 3일까지 치열한 공방전 끝에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이민재 일병이 소속된 통신소대는 적극적인 통신지원 활동으로 작전의 성공에 기여했다. 이후 주기적인 통신선 선로 점검을 실시하기 위해 작전지역 내로 출동했는데, 그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9월 30일에 통신선로 점검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의 습격받고 즉각 반격으로 전환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전몰일자 1950-09-30은 제2사단이 창설되지 않은 시기이므로 1951년 9월 30일로 조정하여 작성)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2판-4면-17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7-ㅋ-02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