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일(李敏一)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68609
  • 전몰일자 : 19510213

공훈사항

이민일 이병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38도선까지 철수했던 1950년 12월 중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1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민일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을 때인 1951년 1월 중순, 제6사단은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가 부대로 전입하기 직전에 사단은 동두천 북방의 전곡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는데,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대규모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 철수했다. 당시 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대공세에 맞서 최대한 타격을 가하고자 했으나, 1951년 1월 1일 새벽 적들이 동두천 부근에서 사단의 후방지역으로 침투하여 공격하면서 전세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이에 포위당할 것을 우려하여 방어진지에서 철수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포기하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했고, 제6사단은 1월 3일에 경기도 광주의 한강 남안에 진지를 점령했다가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민일 이병이 소속된 제6사단은 미 제9군단의 예비사단으로서 주로 군단 후방지역에 대한 수색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한편 미 제9군단은 1월 15일부터 위력수색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한강 남안까지 진출했다. 이처럼 군단 차원에서 위력수색작전인 울프하운드 및 썬더볼트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에 제6사단은 부대정비와 후방지역 수색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제6사단은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 2월 공세 시에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에서 돌파구 확장을 방지하기 위해 싸웠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던 중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부산의 제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2월 13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일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2묘역-1판-1504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3-ㅇ-03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