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용(李珉容)

  • 군별 : 해병
  • 계급 : 상병
  • 군번 : 9217627
  • 전몰일자 : 19521004

공훈사항

이민용 상병은 충북 보은군 보은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1년 12월 13일 진해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 과정을 마친 후 1952년 2월 28일 해병대 제1연대 제1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황은 공산군과 유엔군이 휴전협상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이하기 위해 지리한 공방전을 거듭하던 상황이었다. 이 상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대대는 연대의 일부로서 양구의 월산령지구 방어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연대의 지시에 따라 12월 25일 제1대대는 이 상병이 포함된 2개 분대규모의 기습부대를 편성했다. 12월 27일 오전 5시에 기습부대는 제1대대 방어지역을 통과하여 적진지 100m 전방까지 침투했다. 기습부대는 적의 동태를 파악하던 중 적 정찰대로 보이는 소대규모의 병력을 발견하고 곧바로 공격을 하여 3명을 사살하고 따발총 2정을 획득했다.
1952년 3월 17일까지 이 지역에서 방어작전을 수행하던 해병대 제1연대는 서울의 서쪽 관문을 지키기 위해 3월 17일 미 해병대 제1사단과 함께 월산령을 떠나 파주군 적성면의 사천강 일대에 도착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장단·사천강지구는 경기도 문산과 파주에 접해 있으며 서울과 이어져 있어서 서울의 관문인 개성-문산 축선을 지키는 데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연대는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4월부터 적진에 대한 정찰과 기습작전을 실시했다. 우기인 7월과 8월은 사천강 수위의 변동이 잦아서 적진을 향해 출발할 때에는 낮았던 수위가 복귀할 때에는 수심이 2m를 훨씬 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로 인해 화기와 장비를 가지고 도하작전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하여 아군은 주로 적의 침투에 대비한 매복작전을 실시했으며, 적진에 대한 기습공격은 사천강의 수위에 따라 제한적으로만 실시했다.
우기가 끝나고 9월부터 아군과 적은 전초진지를 보강하며 화력지원하에 기습과 정찰을 반복했다. 10월이 되자 적은 아군의 전초진지를 탈취하고자 10월 2일 포병사격 지원하에 약 2개 대대 규모의 병력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이리하여 피·아간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수차례나 반복되었다. 이 상병은 10월 4일 37전초진지에 대한 역습을 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용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2-ㅈ-06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