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요(李敏堯)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12197
  • 전몰일자 : 19511021

공훈사항

이민요 일병은 1932년 3월 20일 경상남도 밀양군 산동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5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민요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인제 일대 고지전에 투입되었다. 그와 장병들은 5월 8일 험준한 지형과 산악 특유의 짙은 안개로 공격이 지연되었으나 포병의 화력지원을 받아 노동을 감제할 수 있는 972고지를 점령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전과확대를 목적으로 북한군을 추격하였으나 요지요부에 기관총 진지를 구축하고 완강히 저항하여 공격이 부진하였다.
이민요 일병과 연대병력은 5월 16일에는 인제군 일대에 배치된 국군 제3군단을 포위 섬멸하기 위한 5월 공세를 감행하였다. 5월 말 향로봉 산맥으로 진출한 연대는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위하여 진지공사에 주력하면서 전방 지역에 대한 위력수색을 실시하였다. 6월 3일 오후 3시에 북한군 1개 중대 규모가 선제 기습공격으로 이 일병과 연대병력이 방어하고 있던 칠절봉 부근 주저항선 돌파를 기도하였으나 격퇴되었다. 이어 9일과 10일에도 북한군의 공격은 향로봉 부근으로 계속되었으나 그와 연대병력은 그때마다 화력을 집중하여 적을 격퇴하였다.
1951년 8월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지쟁탈전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미 제8군의 작전에 참가하여 서화리 동북방의 924고지를 점령한 다음 동해안으로 이동하여 554고지-고황봉-36고지-강정을 연하는 선을 방어하였다. 10월 3일에 월비산 공격의 사전 포석으로써 351고지(월비산 동쪽 2km)-148고지(고성 동남쪽 3.5km)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준비에 들어갔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10월 12일에 시작된 전투에서 북한군 제19사단으로부터 월비산을 탈취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했던 이민요 일병은 1951년 10월 21일 월비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요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1488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5-ㅎ-07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