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영(李敏永)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802162
  • 전몰일자 : 19500630

공훈사항

이민영 하사는 1931년 6월 1일에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에서 출생했다. 1945년에 조국은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으나 사회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시기에 그는 조국을 위해 군 입대를 결심하고, 1948년 11월 20일부로 경기도 시흥에서 창설된 제17연대에 입대했다.
이민영 하사가 부대로 배치된 이후 제17연대는 서울 용산을 거쳐 1949년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2연대로부터 38도선 경계임무를 인수하였다. 이로써 연대는 옹진지구전투사령부의 작전통제를 받아 옹진반도를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국군은 1950년 3월 1일부로 옹진지구전투사령부를 해체하고, 좌측에서 방어하던 제18연대를 옹진반도에서 철수시켜 수도경비사령부 예하로 복귀시켰다. 이로써 옹진반도에는 제17연대만 남게 되었다. 연대는 64km의 정면에 2개 대대를 배치하고, 1개 대대는 예비로서 옹진 부근에 집결시켰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전면적인 포격에 이어 기습공격을 했다. 옹진반도에는 북한군 제6사단 1연대와 제3경비여단을 투입했다. 제17연대 장병들은 병력 및 화력의 열세를 무릅쓰고 지연전으로 저항하다가 육본의 명령에 따라 6월 26일 아침 부포항에서 해군에서 지원한 LST에 승선하여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민영 하사는 제17연대 장병들과 함께 인천에서 대전으로 이동하여 육본 경비임무를 수행하다가 6월 30일 오산과 평택 사이의 갈곶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미 지상군의 최초 참전부대인 미 스미스특수임무부대가 7월 1일에 부산에 도착하여 이곳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전에 준비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즉 제17연대는 미 스미스특수임무부대가 도착하면 그 우측지역에서 협조된 방어를 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민영 하사는 6월 30일에 분대장으로서 갈곶리 진지에서 방어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적 선견대와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를 하던 중에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영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9판-1면-07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6-ㅎ-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