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식(李敏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805150
  • 전몰일자 : 19520802

공훈사항

이민식 일병은 경상북도 금릉군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일병은 1952년 3월 8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37도선 일대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9사단은 강원 정선군 창리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공군 1952년 2월 공세를 맞이하여 사단 서측방에 대한 적의 공격을 치열한 전투 끝에 막아냈다.
이어서 제9사단은 3월 5일 제1군단에 배속되어 안동 일대까지 침투했다가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12일부터 18일까지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제9사단의 좌전방에 배치된 연대는 1952년 4월 19일 사단 정면에 위치하여 아군의 관측과 기동에 제한을 주던 300고지를 기습해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고 적병 일부를 사살 후 철수했다. 이후 제9사단은 김화지구에서 전초 쟁탈전과 포로획득전,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유엔군은 1952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고 제9사단은 4월 중순 강원 고성군 진부리 일대까지 진격 후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점령했다.
중공군은 1952년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이에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제9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9사단은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철원 서북방의 백마고지와 금화지구에서 중공군과 대치했다. 대치와 동시에 제9사단은 주저항선을 보강하면서 백마고지, 평강 진출로 상에 있는 신화산(343고지)과 그 주변 고지 일대에서 소규모 진지쟁탈전과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2년 8월 2일 수색정찰 도중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식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ㄱ-02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