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시(이민시)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41889
  • 전몰일자 : 19510829

공훈사항

이민시 일병은 경상남도 울산군 청량면 삼정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 총공세로 서울을 다시 빼앗기고 평택-삼척 선으로 철수하던 시기인 2월 말경, 대구에 설치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1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민시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 제2사단은 안동-속리산-제천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4월 초까지 후방지역 소탕작전을 마무리하고 4월 28일에 청평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그가 소속된 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하기 위한 방어작전에 참가했다. 당시 공산군의 작전목적은 주공을 동부 전선으로 지향해 그곳에 집중된 국군을 격멸하여 미군을 고립시킴으로써 향후 휴전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춘계공세(4월, 5월)를 서울 북방-마석-용문산-홍천-하진부리-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민시 일병이 소속된 제2사단은 군단계획에 따라 적의 주력부대와 예비대가 방어태세를 갖추기 전에 섬멸하기 위하여 최대한 신속히 반격하기로 했다. 이에 사단은 5월 20일을 기해 미 제24사단의 가평 진출을 엄호하고, 5월 24일 오전 7시에 일제히 공격했다. 일명 가평-화천 진격전을 실시한 것이다.
이로써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춘계공세가 시작된 이후 계속된 수세에서 벗어나 38도선을 향해 일제히 공격작전을 펼치게 되었다. 미 제9군단은 5월 31일까지 전곡-철원-김화-화천을 잇는 와이오밍 선을 확보했다. 제17연대 장병들은 사창리-다목리-김화에 이르는 계곡통로의 우측 능선을 따라 공격하여 6월 14일에 적근산(1073고지)을 확보했다. 이후 사단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유엔사령부의 작전지침으로 8월 2일에 방어선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공격하여 탈환했다. 그러나 피아간의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고지쟁탈전은 8월 8일까지 계속되었다. 이후에도 745고지에 대한 공방전은 간헐적으로 있었는데, 8월 29일 야간에 아군의 공격으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이민시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11-ㅂ-08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