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수(李玟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830691
  • 전몰일자 : 19520915

공훈사항

이민수 일병은 1925년 11월 13일에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 협상이 진행되면서 고지 쟁탈전이 지속되던 1951년 12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직할 英 제7사단에 배치되었다.
(*전사자 명부에 소속 英 제7사단은 당시 未 참가부대로 입대부터 전사 당시까지 6·25전쟁의 전반적인 경과 위주로 기술)
이민수 일병이 전선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1951년 말부터 유엔군과 공산군이 장기 교착상태에서 때때로 공격행동을 취할 때는 다만 전초진지 주위의 주요고지를 목표로 쟁탈전이 전개되곤 했다. 대부분 전선에서는 연대급 이하의 전초진지 쟁탈이 반복된 소부대전투의 연속이었으며 거의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1952년에 접어들어 국군과 유엔군은 휴전회담의 진전에 따라 수도 서울의 방위에 역점을 둔 군사적 보완책으로, 전 전선에 걸쳐 부대를 재배치하는 한편 부대의 인원, 장비의 개편작업에 착수했다. 여름부터 공산군은 전 전선에서 작전의 주도권을 잡고 아군 전초진지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이후 북한군의 역습이 시작됨에 따라 이들 중 중요 전초진지에서의 쟁탈전은 계속되었고, 이어서 전 전선에 걸친 전초진지 쟁탈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전투는 대체로 피아간에 주진지의 변동이 없는 가운데 보다 유리한 전초진지를 장악하여 각기 방어태세를 강화하려는데 주안이 있었다. 이민수 일병과 부대원들은 적의 기습에 대비하여 야간정찰과 진지 보강작업에 주력했다.
그 후 10월에 접어들면서 판문점의 휴전회담이 포로문제를 중심으로 결렬상태에 돌입하자, 유엔군은 북한군 후방의 전력시설인 수풍발전소와 부전. 장진 등의 발전소에 대하여 대규모의 전략폭격을 가하게 되었다. 이민수 일병은 중공군의 공격에 따른 방어 작전에 참여하여 전초진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2년 9월 15일 기습 침투한 중공군과 교전 중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수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7-ㅈ-106)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