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수(李敏壽)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8500704
  • 전몰일자 : 19520715

공훈사항

이민수 이등상사는 1932년 4월 1일에 경상남도 마산시(現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남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럽던 1949년 11월 23일, 전라남도 광주에 위치한 제5사단으로 현지 입대하여 제20연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제5사단은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5사단은 제15, 20연대가 제1사단 장병들과 함께 문산 및 봉일천 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으나, 전력의 차이로 인해 1950년 6월 28일에 한강을 건너 철수했다. 이때 이민수 이등상사는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0월 초순경 회복하여 제5사단 통신대로 재배치되었다. 당시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재창설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할 때인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 토벌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후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1951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이어서 사단은 태기산 전투(3월), 인제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로써 중공군 5월 공세 때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에 접어들면서 美 제10군단의 강원도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 시, 군단에 배속된 사단은 가칠봉 전투에서 9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5,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혈전을 벌인 끝에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냈다. 사단은 이 전선을 10월 20일부로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1952년 1월 12일까지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하면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그 후 사단은 제1군단 배속으로 1월 23일부터 동해안 거진 일대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전선에 투입되었다.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마침내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야간 10시에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하여 아군 진지가 피탈되었다. 그러나 사단은 즉각 역습으로 주방어선을 지켜냈으며 그 이후 11월 초까지 몇 차례의 소규모 침공을 격퇴했다. 이민수 이등상사는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7월 15일 방어진지에서 소대원을 통제하며 연대와 통신망을 점검 중 적 포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수 이등상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47869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3판-1면-23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4-ㅂ-07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