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섭(李敏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1495
  • 전몰일자 : 19501225

공훈사항

이민섭 일병은 1931년 3월 20일에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2월 중순, 전남 광산의 제20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제20연대는 제5사단 소속으로 호남지구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인 침략을 감행하자, 육본본부에서는 “제5사단은 12시까지 용산에 도착하도록 이동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이민섭 일병이 소속된 제20연대는 지리산과 백운산 등지에서 공비토벌작전에 임하고 있었는데, 작전을 중지하고 출동준비로 전환하여 6월 26일에 송정리역에서 출발하여 27일 오전 7시에 서울에 도착했다. 당시 제5사단장은 27일에 미아리 좌측의 103고지에 전술지휘소를 설치하고, 제20연대장에게 1대대 및 3대대와 제15연대 2대대를 통합 지휘하도록 했다. 연대는 27일 오후에 적 전차 20대가 접근하는 것을 격퇴시키기도 했으나, 28일 새벽에 적 전차가 미아리 고개를 우회 공격함으로써 방어선은 붕괴되었다.
이후 제20연대는 한강을 도하하여 한강방어선에서 혼성 제3대대에 소속되어 노량진 부근 수도고지 일대에 배치되었다. 미군 폭격기의 지원과 한강이라는 장애물을 이용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7월 4일에 적 전차 4대가 경부선 철교에 대한 보수를 끝내고 한강교를 건너옴으로써 한강방어선마저 붕괴되었다.
제20연대는 7월 5일에 평택에서 재편성 시에 제2사단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진천으로 이동하여 7월 8일부터 청주-괴산 축선에서 지연전을 수행하고 7월 20일에 함창으로 집결했다. 이곳에서 제20연대는 해체되고 병력은 제1사단 12연대에 편입되었다. 이민섭 일병이 소속된 제12연대는 8월 3일부터 왜관 및 다부동 일대에서 8월 한 달 동안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했고, 북한군의 9월 공세도 격퇴했다.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으로 전환할 때, 제11사단이 후방지역작전을 위해 재창설되었고, 이때 해체되었던 제20연대는 9월 25일 삼랑진에서 재창설되었다. 이민섭 일병은 제20연대가 재창설될 때에 창설요원으로 전속되었다. 이후 제20연대는 지리산 서남쪽인 전남지구에 분산 배치되어 공비로 변한 북한군 패잔병 토벌작전을 실시했다. 그가 소속된 중대는 12월 25일에 공비토벌작전을 나갔다가 소대 규모의 공비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섭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2판-1면–17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ㄲ-00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